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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건축가 : 고유한 존재의미 공유하기

by PAO 2023. 8. 3.

아래는 학생자율세미나 수업 "큐레이팅 아키텍처: 건축, 전시, 문화"의 과제로 제출했던 내가 구상한 가상의 전시 서문과 포스터이다. 참여 작가라던지 작품까지는 다루지 않았다.

 

건축이 제각각의 인간 사이를 관통해 자신의 존재의미를 공유시키기 위해서는 다수의 프로 건축가 대신 다수의 아마추어 건축가가 필요하다.

 

만화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독자에게 개별 칸 속 인물이 동일한 존재로 인식되어야 한다.[각주:1] ‘여러 칸 속의 인물을 동일인으로 파악하는 한 명의 독자다 대 일의 구도라면 하나의 만화 작품을 수용하는 대중일 대 다'의 구도로 이해할 수 있다. 캐릭터는 칸과 칸을 뛰어넘고 작품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뛰어넘으며 고유한 존재의미를 전달한다.

 

하나의 건축물을 무수한 사람이 경험한다는 점에서 건축물 또한 일 대 다의 구도 속에 놓인다. 예술 장르 중에 건축이 가진 독특한 문제는 자신의 존재의미를 제때 증명해내지 못할시 가차 없이 철거당한다는 것이다. 수신자(다 측)들의 감상이 지나치게 엇갈려서 발신자(일 측)의 존재의미 혹은 가치에 대해 윤곽조차 그려내지 못하면 자본 논리가 중재하며 철거로 마무리된다. 건축물의 고유한 존재의미를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어야 우리 사회가 자본 이외의 기준으로 건물에 대한 가치판단을 내릴 수 있을 텐데 한국 사회는 철거가 예고되어야 비로소 건축물의 존재의미를 찾아 나선다. 자본 가치는 철거 입장에 서고 각자가 생각하는 그 이외의 가치들은 보존 입장에 허겁지겁 모이는 상황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산발적인 건축물의 존재의미를 수렴시켜 고지된 철거 일정 전에 대중들과 공유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전문가 혹은 직능인(건축사)으로서 건축가는 의뢰인이 원하는 바를 예산 안에서 사회와 마찰 없이 이루도록 도와주는 것을 주요 업역으로 삼는다. ‘일 대 일의 구도를 따르기 때문에 건축물이 가지는 고유한 존재의미를 찾아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지는 그들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이 문제는 아마추어 건축가들에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의뢰인이 없는 아마추어 건축가는 이해관계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도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마추어는 프로 자격 조건 미달 상태를 뜻하지 않고 비평가 이여로가 제안하는 아마추어리즘 정의에 기반한다.[각주:2] 건조환경을 주요 연출수단으로 삼는 영화감독, 배경설정에 엄격한 만화가, 공간화 할 수 있는 조형언어를 탐구하는 화가나 조각가, 특정 유형의 건축물이나 일관된 감수성의 풍경 스냅사진을 SNS에 올리는 계정, 재활용품을 가지고 상상 속의 집을 만드는 어린이 모두 아마추어 건축가에 포함될 수 있다.

이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자기 안의 아마추어 건축가정체성을 찾기를 바란다. 그렇게 아마추어 건축가가 늘어난 한국사회의 건축문화는 조금 더 풍요로울지도 모른다.

 
  1. 사이토 타마키는 저서 캐릭터의 정신분석에서 이즈미 노부야키의 의견을 참고해 캬라(캐릭터의 일본식 발음, 해당 책에서는 변함없는 고유성을 가진 존재를 의미한다.)의 조형이란 바로 시공을 초월한 동일성이 성립하는 존재를 만드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칸과 칸(만화) 컷과 컷(애니메이션) 화면과 화면(회화나 프린팅)마다 변형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어떤 존재를 우리가 동일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알아볼 수 있는 고유한 조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본문으로]
  2. 비평가 이여로는 문학과사회 하이픈지 문학사회2021년 가을 호에 실린 글 아마추어리즘의 사회, 그리고 예술에서 아마추어리즘은 이미 만들어진 생각의 재현이 아니라 생각함의 행위성으로 되돌아간다. 지식이 그 바깥에서 행위를 객체화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가 지식들을 객체화해서 이용할 때에야, 주체성의 자리가 마련된다.”라고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한 행위를 정의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