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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예고편과 엔딩크레딧이 보여주었던 풍경(vista)에 대한 헌정 :존 듀이의 미적 경험에 대한 정의를 바탕으로 추미림의 〈Vista〉를 예술 작품으로 정의하기

by PAO 2024. 2. 29.

 

이 글은 '예술의 가치와 비평' 수업에서 기말 과제로 제출했던 레포트를 일부 수정한 글이다.

 

그냥 디자인과 나온 사람이 할법한 작업이던데

 추미림(1982~)의 작업을 추천하자 친구가 자신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며 함께 전한 감상이다. 추미림은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지털 화면의 가장 작은 단위인 정방형의 픽셀과 위성지도를 통해 내려다 본 도시에서 추출한 도형을 작업 모듈로 활용하는 작가이다. [각주:1] 혹평의 근거로 그녀가 사용하는 조형언어가 제한적이고 회화나 영상의 활용 또한 특별히 반성적이지 않다는 점이 제시되었다. 친구의 평가는 그녀가 사용하는 조형 언어가 반복적이며, 픽셀이 추출된 매체에게로 다시 픽셀을 되돌린다는 점에서 매체 활용 또한 특별히 반성적이지 않다는 점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한 비판을 수용하더라도 그녀의 작업이 주는 감동은 저해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감동은 픽셀을 사용한 게임(대략 90년대~00년대의 그것들)이 엄청나게 밝고 선명하며 세련된 것으로 느껴졌던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전자상가에서 일한 아버지 덕분에 비디오게임, 플래시 게임, 애니메이션등의 강렬한 시자극에 매료되어 평소 망상에까지 깊은 영향을 받았던 나와 다르게 그 친구는 초등학교까지 그러한 매체들을 많이 접하는 환경이 아니었다고 한다.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추미림의 작업에 대한 가치 평가가 감상에 선행하는 일상 경험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일상에서의 경험을 미적 판단의 토대로 이해하는 존 듀이의 경험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추미림의 작업이 갖는 가치를 설명하고자 한다. 구체적인 비평 대상으로는 〈Vista〉를 선정했으며 존 듀이의 『경험으로서의 예술』 번역본을 주요 참고문헌으로 삼았다.

(왼쪽) 추미림, 〈Vista〉, 2023, 루프 비디오 설치, 75인치 TV 4대, 컬러, 사운드, 투명/거울 아크릴 조각, 가변 크기, 5분. 사진 Kenn (오른쪽) 〈Vista〉 전시 전경. 총 4개의 루프 비디오가 연달아 붙어있다. 사진 뉴시스

 

존 듀이(John Dewey, 1859-1952)는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자아를 새롭게 하는 과정으로서의 삶으로 변화를 가져오는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 철학자이자 교육자이다. [각주:2] 그는 대표작 『경험으로서의 예술』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있는 그대로의 경험이라도 정말 그것이 하나의 경험이라면, 이미 다른 어떤 경험 양식에서 유리된 대상보다 미적 경험의 내재적 본성에 단서를 제공하는 데 더 적합하다.” [각주:3] 이때 그는 모든 경험이 아니라 ‘하나의 경험’이라는 단서를 단다. 그가 말하는 하나의 경험이란, 경험되는 내용이 순조롭게 완성에 다다르는, 비유적으로는 만족스럽게 종결되는 작품, 해결되는 한 가지의 문제, 최후까지 진행되는 게임과 같은 것으로 다른 경험과 구분되는 성질 및 자족성을 갖춘 경험이다. [각주:4] 그리고 미적 경험이란, 미의 이상이 구성되는 경험인데, 이것은 현재를 과거나 미래에 예속시키는 인간이 과거의 추억과 미래의 전망에 몰입해 환경과 완전히 융합되는 경험이다. [각주:5] 이때 예술은 그의 표현에 따르면 “과거가 현재를 강화하고 미래가 현재를 고무하는 계기들을 아주 치열하게 경축”한다. [각주:6] 그리고 이러한 과거와 미래가 현재의 환경과 융합되는 경험은 곧 “다양한 행위들, 에피소드들, 사건들이 결집되고 융합해 단일체가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자체의 특성이 사라지거나 상실” 되지는 않는 경험이라고 말한다. [각주:7] 그는 예술작품이 수용자에게 주는 미적 경험 뿐만 아니라 예술작품에 대한 창작자의 미적 경험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모든 완전한 경험은 성장을 위한 시간을 가지고 있으며 그 시간 동안 예술가는 소재를 자신의 경험들과 역동적으로 조직화하여 한순간 속, 다시 말해 작품에 집결시키는 미적 경험을 하게 된다. [각주:8] 결론적으로, 작가의 미적 경험의 산물이 수용자에게도 미적 경험을 제공할 때야 그것이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이 되는 것이다.

 

[왼쪽] 첫 번째 비디오 [오른쪽] 두 번째 비디오
[왼쪽] 세 번째 비디오 [오른쪽] 네 번째 비디오

추미림의 〈Vista〉는 《제2회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 언폴드엑스 : 달로 가는 정거장》에 설치된 작업으로 일반적인 탁자 높이에 연달아 놓인 장방형 모니터 4대가 각각 데이터, 화면, 속도, 도시에 관한 루프 비디오를 상영하고 있으며 모니터 위에는 그녀가 이전 작업에서 습득했던 조형 언어들이 투명 아크릴로 제작되어 올려져 있다. [각주:9] 벽으로부터 떨어져 있으므로 작품을 빙글 돌아볼 수는 있지만 화면 속에 등장하는 기호들이 한쪽에서만 알아볼 수 있고, 땅과 하늘처럼 흑백의 배경 구분이 일관된다는 점에서 전시실 입구에서 바라보는 방향이 의도된 감상 방향임을 알 수 있다. 입구부터 순차적으로 네 화면을 감상하다 보면 직접적으로 내용이 연결되지 않음에도 마치 소설의 4단계 구성처럼 읽힌다. 첫 번째 비디오는 형형색색의 길쭉한 직사각형들이 겹친 채 생기 있고 빠르게 왼쪽으로 흘러간다. 두 번째 비디오는 전반적으로 정지되고 비어 있는 흑백 화면에 일부 기호들이 깜빡이며 직선 운동을 한다. 세 번째 비디오는 다시 형형색색의 조형들이 떠다니며 트랙을 닮은 구도 때문에 그녀가 강조한 속도가 극대화되어 있다. 마지막 비디오는 겹친 직사각형들이 흘러간다는 점에서 첫 번째 비디오와 대구를 이루지만, 이번엔 흑백이며 가장 밀도 높게 화면이 채워져 있고, 원경에는 달에서 본 지구와 비슷하게 그림자 진 형상이 보인다. 전시 부제를 고려한다면 평화로운 지구인(색이 있는 별)이, 달(흑백의 별)로부터 어떠한 계시를 받고, 인상적인 여정을 거쳐, 결국 달에 도착하는 내러티브가 어렵지 않게 떠오른다.

 

이제 존 듀이의 관점을 적용해 보자. 우선 추미림은 도트를 찍는 아이콘 디자이너를 거치며 픽셀이라는 소재를 습득했다. 비평가 문정현에 따르면 그녀는 초기작부터 화면에 보이지 않는 그리드를 채우는 테트리스와 같은 방식으로 회화의 틀을 채워나갔다. [각주:10] 그 뒤, 그녀는 어린 시절의 게임뿐만 아니라 고향으로 여기며 살고 있는 신도시에서의 경험도 작업으로 취합했다. 위성의 시력을 경유하여 건물 옥상의 각진 꼴들을 거대한 픽셀 덩어리로 번역하고 자신의 조형 언어로 삼은 것이다. [각주:11] 횡스크롤 게임과 같은 템플릿, 네모난 요철의 조형 언어들, 내려다보이는 화면, 도시를 암시하는 지평선과 직사각형들 등 소재들을 자신의 경험과 역동적으로 조직화한 〈Vitra〉는 존 듀이가 정의한 '창작자가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의 미적 경험'을 만족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편 〈Vitra〉는 추미림의 다른 작품들보다도 감상자를 과거의 추억과 미래의 전망에 몰입시켜 작품이 펼쳐놓은 환경과 강하게 융합시킨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수용자로 하여금 과거의 생생한 게임플레이를 둘러싼 경험을 떠올려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과거의 생생한 게임플레이'란, 표현기법과 관련된 것이다. 추미림은 벡터 이미지를 RGB 모니터로 출력한다. 한없이 밝은 픽셀 형상은 선명한 색채와 끊김이 없이 부드러운 애니메이션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픽셀이라는 단어가 상기시키는 낮은 해상도에 따른 거친 질감이 없다. 과거의 게임플레이가 주었던 생생함에 대한 경험을 하려면 추미림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보다 바로 그 게임을 옛날 하드웨어에서 다시 플레이 하는 일이 나을 거 같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제와서 구형 아타리 게임기에서 시동되는 게임이 추미림의 작업과 같은 선명하고 활기찬 움직임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 속 기차를 보고 극장 밖으로 뛰쳐나가는 사람이 더 이상 없듯이 재현에 대한 리얼리티의 기준은 새로운 기술과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계속해서 갱신된다. 과거의 게임을 다시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때 그 선명함과 활력이 아니라, 당시에는 신경쓰이지 않았던 조야한 그래픽과 조악한 시스템으로부터 새어나오는 미심쩍은 이스트에그다. 이런 등골 서늘한 재발견들이 종국에는 크리피파스타로 발전해 2010년대 인터넷 하위문화를 강타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각주:12] 다시 말해 '과거의 생생한 게임플레이'는 동일한 게임을 플레이하는 조건으로는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온전하게 마무리되었던 듀이적 작품 경험이 들쑤셔지고 해킹된 결과 보존하고 있던 감동이 무참히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

한편 픽셀 게임을 리마스터 했다면 기술이 뒷받쳐주기 때문에 '과거의 생생한 게임플레이'를 경험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게임의 플레이는 〈Vitra〉와 같은 미적 경험을 제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미래의 전망이 누락되어있기 때문이다. 리마스터 게임은 게임이 크리피파스타로 부패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방부제를 뿌리는 행위일 뿐 듀이가 경험을 수단 삼아서 달성하고자 했던 목적, 즉 성장이 없다. 팩맨 리마스터 게임의 미래는 팩맨 리마스터의 리마스터, 팩맨 리마스터의 리마스터의 리마스터일 뿐이다. 팩맨 2는 결코 나타날 수 없다.

 

리마스터 게임과 다르게 〈Vitra〉가 가지는 '수용자를 몰입하게 하는 미래의 전망'은 내가 말한 '게임을 둘러싼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앞서 밝혔듯 〈Vitra〉에서는 마치 아케이드 게임의 시놉시스 같이 기승전결이 확실한 최소한의 내러티브가 읽힌다. 픽셀 형상들(소재), 횡스크롤(움직임의 구현 방식), 도구적인 내러티브(몰입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의 요소는 확실히 게임작법에서 온 듯하지만, 이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의 《게임사회》에 전시되었던 작품들과 같은 게임 본편이 아니다. 오히려 〈Vitra〉는 파편화된 장면을 짜깁기한 예고편(발단-전개-절정에 해당하는 1~3번 비디오)과 후일담으로 연출된 엔딩크레딧(결말에 해당하는 4번 비디오)이 병치 된 것에 가깝다. [각주:13] 즉 〈Vitra〉는 게임플레이 전후로 위치하던 순간을 이어 붙여서 게임을 시작할 때의 설렘과 게임이 끝난 뒤의 후련함을 응축하는 셈이다. 설렘은 앞으로 펼쳐질 게임 플레이에 대한 전망이며 후련함은 다음에 플레이할 게임이 자리 잡을 마음의 여백으로서 미래의 전망이 된다. 예고편이자 엔딩크레딧으로서의 〈Vitra〉는 하나의 게임에 대한 경험을 상기시킬 뿐 아니라, 한 게임을 마무리 짓고 다음 게임으로 넘어가던 게임들에 대한 경험으로까지 경험의 시간 축을 확장한다. 이제 처음에 언급했던 친구와의 감상 차이를 다시 설명할 수 있다. 친구는 〈Vitra〉에서 시각디자인과 출신인 작가의 삶을 보았지만, 나는 게임의 예고편과 엔딩크레딧들이 흘러가던 지난날의 "풍경"을 이 작품 덕분에 다시 만날 수 있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증을 요약하자면, 추미림의 〈Vitra〉는 작가의 미적 경험을 응축한 작업이며 옛날 픽셀 게임을 상기시키는 요소들을 벡터 그래픽으로 표현해 그러한 게임의 플레이가 지니고 있던 생생함에 대한 경험을 떠올리게한다. 게다가 작품은 게임 본편이 아니라 예고편과 엔딩크레딧의 구성을 취함으로써 펼쳐질 게임플레이 그리고 이 다음에 플레이할 게임에 대한 기대로까지 확장된 미래의 전망으로 수용자를 몰입시킨다. 따라서 〈Vitra〉 는 창작자와 수용자 모두에게 미적 경험을 제공하므로 존 듀이의 정의에 따라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1. 추미림, 추미림 도록, (픽셀스페이스,2023)에 실린 작가 소개 [본문으로]
  2. 박준영,박미숙, 「John Dewey 경험철학의 변화성 원리에 의한 철학적 치유 가능성」 , 『한국교육사상연구회 학술논문집』, 1호(2014): 30. [본문으로]
  3. 존 듀이, 『경험으로서의 예술』 , 이재언 옮김(서울:책세상,2021), 31. [본문으로]
  4. 같은 책, 79. [본문으로]
  5. 같은 책, 45. [본문으로]
  6. 같은 곳. [본문으로]
  7. 같은 책, 85. [본문으로]
  8. 같은 책, 115-116. [본문으로]
  9. 데이터, 화면, 속도, 도시에 관한 것이라는 작가의 의도는 다음 인터뷰 참조. 백아영, 픽셀에서 첨단 기술에 이르기까지 : 신작 선보이는 사일로랩·추미림, 문화+서울 2023년 11월,

    https://magazine.sfac.or.kr/html/view.asp?PubDate=202311&CateMasterCd=200&CateSubCd=3392, 확인 날짜: 2023년 12월 12일. [본문으로]

  10. 문정현, 「네모, 삼각, 동그라미와 현실의 벽돌」 , 『추미림 도록』 , (픽셀스페이스,2023), 5. [본문으로]
  11. 위성의 시력이라는 표현은 윤민화의 비평글에서 발췌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참조. 윤민화, 「시력Vision의 새로운 비전」 , 같은 책, 26-29. [본문으로]
  12. 대표적으로 개인화된 〈마리오64〉, 〈Sonic.exe〉와 같은 원작 게임의 라이브러리를 해킹해 유포된 공포게임들이 있다. 이것들은 마치 추억 속 게임의 추악한 진짜 뒷이야기인 것처럼 등장하여 인터넷 유저들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와 관련한 인터넷 밈의 흐름에 대한 서술은 나원영, 『대체 현실 유령』 , (서울: 마테리알,2020) 3장을 참조. [본문으로]
  13. 엔딩크레딧에서 후일담과 같은 연출의 예로는 〈메탈슬러그〉시리즈가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