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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을 복원, 재현하는 것의 의미와 전제 조건

by PAO 2024. 2. 29.

아래의 글은 건축디자인이론2 수업에서 중간 과제로 제출되었던 글을 수정한 것이다. 제시된 질문에 대해 입장을 정하고 주장하는 글을 써야 했다.

 

제시된 질문: 건물을 복원, 재현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가?

 

고든 마타 클락의 splitting(1974)은 철거 직전의 목조 주택을 정교하게 반 갈라 놓는 과정과 결과물을 사진으로 기록한 작업이다. 이 작품은 70년대 미국 중산층의 붕괴된 삶을 의미한다고 알려져 있다. 원래의 물성을 잃고 종잇장이 찢어진 모양새에 가까운 사진 속 집은 스위트홈의 환상이 얼마나 순식간에 붕괴했는지 폭로하는 듯하다. 만약 이 작업이 제자리에 복원되고 직접 가서 볼 수 있다면 사진으로 전해지는 폭로의 인상은 작품 해석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아질지도 모른다. 실제로 집이 얼마나 큰지, 절단면은 어떤지 그리고 하루 동안 빛과 바람의 변화 등이 감상에서 중요해질 것이다. 바르셀로나 국제박람회 이후 철거되었던 미스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1929)1986년 복원된 뒤 흑백 사진과 도면에 기반했던 공간 분석과 감상이 갱신된 것처럼 말이다.

 

사진으로만 남은 클락의 작업이나 사진과 도면으로 분석되어 오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에서 알 수 있듯이 꼭 건물을 직접 경험해야만 건물에 얽힌 의미망이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비용을 들여 사라진 건물을 복원, 재현하는 데에는 분명 사진이나 유적 등이 전달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사회와 시민의 입장에서 어떤 가치를 얻을 수 있는지 구분해 생각해 보았다. 사회 입장에서는 이런 사업이 공동체의 정체성 확립 및 존속을 위한 아카이브로서의 가치를 확실히 가진다. 반면 시민 입장에서는 직접 경험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감상이 발생해야 비로소 가치가 있다고 느낄 것이다.

 

보물 1호라는 공동체 정체성에서의 위상 때문에 대대적으로 실시된 숭례문 복원 사업은 복원작업의 성패가 견고한 아카이브 구축과 관련 있음을 일깨워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숭례문 복원 직후 중앙일보 이승호 기자의 사설을 보면 전통도구와 기술로 숭례문을 복원한다는 원칙은 제대로 됐으면 문화재 복원의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였다."라고 평하며 복구공사에 참여한 한 장인을 인용해 숭례문 공사 덕분에 그나마 단청 등 단절됐던 전통기법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라고 말한다. 숭례문은 2002년 안전진단을 위해 국내 최초로 3D 스캔을 진행했고 그 데이터가 과거 도면을 보조해 복원 사업에 도움을 주었다. 복원 사업을 계기로 단절되었던 장인들의 연구나 도면 자료가 집성될 수 있던 것이다. 한편, 이 사업을 비롯한 문화재 복원 사업의 실패를 분석하는 보고서에서도 아카이브와 네트워크 구축이 미흡하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대표적으로 감사원의 2014년 보고서 문화재 보수 및 관리 실태는 전국에 배치된 수리기술자 현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어 문화재 복원 현장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된다고 지적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숭례문 복원현장에서도 제대로 된 기술이 없는 장인이나 근태가 태만한 업체를 고용하여 현장에 차질이 자주 빚어졌다고 한다. 큰 사업이었던 숭례문 복원을 통해 복원 사업이 사회에 대해 가지는 아카이브 구축으로서의 가치가 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시민의 입장에서 건물의 복원, 재현이 가지는 가치를 살펴볼 차례이다. 조선시대 비슷한 위상을 가졌던 제사용 기단인 선농단은 현재 재현되었고 선잠단은 복원되어 있다.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박물관인 선농단역사문화관은 경사지에서 옥상으로 바로 접근할 수 있는 랜드스케이프 건축 유형의 건물이다. 건물지하는 선농단과 선농제에 대해 설명하는 전시공간이고 옥상의 잔디밭에는 제단과 홍살문이 놓여있고 이웃한 천연기념물 향나무랑 연결된다. 얼핏 제자리에 복원된 듯 보이지만 정확한 선농단 자리는 일제에 훼손된 이후 전해지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설치된 제단과 홍살문 등은 완전한 재현물이다. 반면, 성북구 성북동의 선잠단의 경우 2016년 같은 자리에 터 유적이 발견되면서 그것에 기초하여 제단을 복원하게 되었다. 원래 위치도 아닌 곳에 지역부흥을 위해 재현된 가짜 선농단은 나쁜 사업이고,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듯 보이는 선잠단은 좋은 사업이라고 예상될 것이다. 하지만 직접 방문해보면 그렇게 간단히 판단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복원된 선잠단은 정말로 신성한 땅이기 때문에 행사가 있을 때만 문을 열고 평소에는 새로 생긴 울타리로 접근이 막혀 있다. 복원되기 전에 같은 자리에 조성되었던 작은 공원에서는 울창한 뽕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가며 사색에 잠길 수도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휑하게 놓인 홍살문과 제단을 정면 샷으로만 담아갈 수 있을 뿐이다. 앉을 곳 하나 없기에 선잠단 앞은 잠시 들리는 관광객을 제외하면 한산하다. 한편 재현된 선농단은 신성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강아지를 산책시킬 수도 있고 제단 위에 올라가 볼 수도 있다. 게다가 신과 옛사람들의 관계, 왜 이 장소를 다시 만들게 되었는지 따위를 천천히 생각해볼 수 있는 벤치도 놓여있다. 잠시 벤치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지하 전시공간의 설명 이상으로 선농단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선농단을 원래 위치에 복원한 뒤 선잠단처럼 접근을 막았다면 사람들이 거기서 매일 같이 산책하고 수다 떨며 그 가치를 환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인터넷 검색과 똑같은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서야 하는 선잠단보다는 매일 경험할 수 있는 선농단이 시민들에게 더 의미있는 장소로 기억될 것이다.

 

그런데 복원, 재현된 공간이 시민에게 경험될 때 의미를 가지려면 한 가지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는 듯하다. 바로 별도의 원본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관광으로 인한 석굴암의 지속적인 훼손에 대한 대비책으로 관광은 재현된 모형에서 치루고 석굴암은 온전하게 보전하자는 석굴암 모형 전시관 건립 논쟁을 기억할 것이다. 건립 반대파이자 국립경주박물관장을 지낸 강우방 교수는 모형관이 결코 원본의 아우라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에 모형관 건립은 우리 스스로를 결핍된 경험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호소했다. 모형에는 아우라가 결핍될 것이라는 불안은 원본 건물이 남아있는 한 떨쳐내기 어려울 것이다. 만약 모형관이 건립되고 원본 석굴암과 모형관을 둘 다 경험해본 사람들이 석굴암의 경험을 더 높게 쳐준다면 모형관은 틀린 그림 찾기의 희생양이 될 뿐이다.

한편 현재의 남서울 미술관은 대한제국 시절 본래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본점 근처에 준공되었던 벨기에 영사관(1905)1983년 이전 복원한 건물이다. 다시 지을 터를 어디로 해야 의미를 해치지 않을지가 재현, 복원 사업의 중요한 쟁점 중 하나이지만 남서울 미술관의 경우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밀려나고 장소가 결정된 것이라 이전 이후 건물의 의미가 퇴색될 수도 있었다. 흥미롭게도 건물의 이런 사연은 디아스포라 등을 주제로 한 작품과 공명하며 작품의 의미를 확장 시키기도 한다. 만약 남서울 미술관이 이전된 건물이 아니라 단순히 남현동에 신축한 건물이었다면 그런 작품들과 공명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앞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어떠한 건조물이든 별도의 원본이 없고 경험할 수 있게 복원, 재현한다면 시민들에게 의미가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이 될 만한 사례를 살피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2019년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은 조선시대 3대 시장이란 타이틀을 걸고 근대역사문화거리를 조성했다. 지역사에 의미 있는 은행 같은 근대 건물을 복원하기도 했지만, 조성된 건물 대부분은 샌드위치 패널에 뿜칠 마감한 외장재 사이사이를 실리콘으로 두껍게 메꾼 일제강점기 단층 상업 건물의 재현이다. 일부 구간의 건물군은 숙소로 기획되어 관광객들을 오래 붙잡아 두겠다는 지자체의 야심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실제로 방문했을 때 뿐만 아니라 보도자료나 홍보 콘텐츠에서조차 관광객이 보이질 않는다. 비슷하게 개화기를 재현한 논산시 연무읍의 관광지 선샤인 스튜디오(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세트장)가 코로나에도 성황을 이룬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관광객 확보에 실패했기 때문인지 강경 근대역사문화거리에 청년창업 공간을 운영한다는 최근 소식(227)이 보인다. 강경 사례의 성패 요인은 접근성, 마케팅, 지역 연계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 볼 수 있겠지만, 선샤인 스튜디오뿐 아니라 군산, 인천, 포항 등 여러 지역의 개화기 재현 거리가 이슈가 된것에 비교하면 강경은 지나칠 정도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건 아마도 재현된 강경의 개화기 풍경이 비슷한 컨셉으로 경쟁하는 다른 지역에 비해 관광객들에게 방문할 가치가 있는 풍경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강경의 사례를 통해 재현, 복원된 건물이 의미가 있으려면 경험 자체의 가치 또한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