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도시와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 비정기 연재 잡지 "도만사 3호"에 투고한 책 "경성의 아파트"에 대한 독후감에 한 문단 추가했다.

몇 년 전에 어느 주공아파트의 준공 즈음 사진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었다. 일반적으로 아파트는 재산증식의 욕망과 다양성을 용인하지 못하는 한국사회의 단편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사진 속 아파트에서는 새 시대를 살아가는 신선한 희망이 느껴졌다. 성냥값 아파트도 40년 전에는 보다 다양한 의미를 가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규모 주공아파트단지들이 재개발 대상이 되고 그곳에 인연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다시보기’가 시작되었다. 주공아파트의 경우 자료가 비교적 충실하게 모여져 있고 개인들의 기록물도 꽤 남아있다. 이런 자료들 덕분에 가까운 과거와 현재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가 어떤 의미인지 최근들어 논의가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덕분에 사람들은 아파트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보고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는 거 같다. 많은 경우 주공을 중심으로 아파트 논의가 이뤄지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아파트가 주공에 의해 시작된 건 아니다. 한국인에게 아파트가 어떤 의미였는지 제대로 논의하기 위해서는 서울이 경성이라 불리던 시절의 아파트까지 논의에 포함 시켜야 한다. 경성 시절 아파트들은 한국 건축가와 관계 없이 대부분 일본 자본으로 지어졌으며 보편적인 주거유형이 아니었고, 민간 건축물 특성상 참고할 만한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인지 주공 이전 아파트들은 한국 근현대 건축에서 상당 기간 소외된 주제였던 거 같다.
“경성의 아파트”는 그런 점에서 사료들을 정리하고 가공해 논의의 출발점을 만들어 주는 상당히 의의가 있는 책이다. 저자들의 조사방식을 대략 정리하자면 아파트의 이름, 위치, 소유주는 주로 신문기사와 전화번호부를 비교했고, 아파트의 도면은 주로 관청에 제출된 (수선)도면, 건설사 아카이브나 당시 잡지 등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아파트의 생김새는 운 좋게 준공 사진이 있는 경우 아니면 지도와 엽서, 미군 자료 등에서 찾아냈다. 디지털 아카이브가 꽤 갖춰지긴 했지만, 많은 아날로그 자료들도 발굴하면서 실체가 불분명했던 건물들을 추적하고 정리한 저자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절로 경의를 표하게 된다.
저자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아파트는 20년대 말부터 지어지기 시작해 30년대 중반까지 아파트의 시대가 되었다. 한 주택에 한 가구만 사는 게 보통이었으므로 아파트는 주택이라기보다는 대실업의 형태로 이해되어 여관, 호텔 등으로 자주 업종이 변경되기도 했다. 실제로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잠시 집에서 나와있거나 아직 가정을 꾸리기 전인 사람들이 임시 거처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로 인해 아파트는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사는 공간으로 신비화되어 사회면에 등장하기도 했다. 한편 일제는 주택공급 문제를 아파트로 해결하고 싶었으나 전쟁물자 부족과 건물주들의 이익 문제 때문에 30년대 말부터 아파트는 잘 지어지지 않았다. 지어졌던 아파트들은 도시건축의 한 유형으로 그 규모와 근대성으로 인해 해방 이후 미군 관련 시설이나 관청, 관사로 오래 이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일부 건물은 여전히 잘 사용되고 있다.
이 책은 학술 연구를 기반으로 하기에, 확실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선 흥미롭다 하더라도 추측에서 멈춘다. 사료가 충분치 않은 건물들이 많다 보니 은근히 그런 마무리가 나온다. 선명한 주제의식이나 경성의 아파트 A to Z를 기대한 사람에게는 조금 아쉬울 수 있는 부분이다. 사실확인이 어려웠던 내용까지도 책에 실은 걸로 미루어 어쩌면 저자들은 경성의 아파트를 톺아보는 다음 여정을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 것일지도 모른다.
+ 이 책을 읽으면서 경성에서 아파트는 어떤 의미였을지 궁금했는데 당시의 아파트는 가족이 아니라 독신자의 주거유형이었다고 한다. 그런점에서 지금의 공유주거와 닮은 점이 있었다.
1)임시 거처. 공유주거에 대한 평균 거주 기간 통계는 잘 안잡히는 거 같다. 그런데 전해 듣기로는 그렇게 길게 살지 않는다고 한다. 대부분 월세 계약인데 이사에 대한 부담도 적고 해서 그런지 1년도 안 사는 경우가 많다고.. 의욕적인 힙스터들이 살긴 하는데 제대로 된 커뮤니티로 발전하기에는 너무 임시적이라는 거 같다. 어떤 일이든 제대로 성과가 나려면 1년은 고정된 멤버로 가봐야 하지 않은가.
2)방은 작고 공용 공간이 주어짐. 당시에는 당구가 굉장히 핫한 여가생활이었다고 한다. 당구장이나 사무실, 상점 같은 상업시설이지만 주민들 끼리 대화할 만한 공간들이 1층에 있었고 어떤 집들은 공용 응접실 같은 것도 현관쪽에 있었다. 이런 모습은 공유주거가 강조하는 커뮤니티시설(혹은 오락시설)과도 비슷한 면이 있는 거 같다.
물론 공유주거가 좀더 다듬어지고 이것저것 발전한 형태인건 맞지만, 같은 주거 형태인 아파트가 독신들이 살때는 공유주거, 가족들이 살 때는 주공아파트가 된다는 점에서 누가 사느냐가 더 중요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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